영화가 현실로 … 자기장으로 뇌 자극하니 기억력 ‘점프’
과학기술로 머리가 좋아지게 할 수 없을까.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두뇌에 도전하는 시대라면, 불가능할 것 같지 않다.
닐 버그 감독의 과학소설(SF) 영화 ‘리미트리스’(2011)는 머리가 좋아지는 알약을 먹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글 한 편조차 제대로 못쓰는 무능한 작가가 알약을 복용하고 나서 보고 들은 것을 모두 기억하고, 하루에 한 개의 외국어를 습득하며, 아무리 복잡한 수학공식이라도 순식간에 풀어내는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
말 그대로 공상 같은 얘기지만, 21세기 과학자들은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다. 영화에서는 알약을 먹지만, 현실에서는 자기장의 힘으로 두뇌를 자극해 기억력이 좋아지게 한다.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력이 나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뇌과학이미징센터의 김성신(39) 박사는 경두개 자기자극과 자기공명 영상기법을 이용해 사람의 기억력을 높이고, 또 이 과정에서 자극이 뇌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혀냈다. 김 박사의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온라인에 22일 게재됐다. ‘경두개 자기자극’(TMS: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이란 두개골을 열지 않고 외부에서 자기장으로 뇌를 자극한다는 의미다.
경두개 자기자극기가 세상에 나온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그간은 뇌 자극을 통해 특정 기능을 무디게 하는 방식으로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주로 쓰였다. 2014년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같은 방법으로 계속 뇌의 깊은 곳에 자리한 해마를 자극하면 기억력이 좋아진다는 결론을 얻긴 했지만 구체적 인과관계를 밝혀내지 못했다.
김 박사는 경두개 자기자극 실험에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를 활용했다. 이를 통해 뇌의 활동을 시각화해 자기자극이 뇌의 기억을 담당하는 회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했다. 16명의 건강한 성인들을 대상으로 매일 20분, 5일 동안 머리 윗부분 중 왼쪽 측면 부분에 자기자극을 가했더니 사물의 위치나 연관된 이미지를 기억하는 ‘연상기억능력’이 15% 이상 좋아지는 결과를 확인했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나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미국 켄터키대학 연구팀은 지난해 말 의학부문 국제학술지 ‘신경과학지’에 나이가 들면서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과 연관이 있을 수 있는 단백질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공간 기억력과 연관이 있고 해마 내 신경세포의 칼슘 항상성과 연관된 ‘FKBP1b’라는 단백질을 연구했다. FKBP1b가 어떻게 기억력과 노화 관련 유전자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기 위해, 인지능력 저하가 시작되기 전인 생후 13개월에 한 차례, 노화가 시작된 19개월에 추가로 한 차례 투여한 결과, FKBP1b가 인지능력 저하를 막고 심지어 회복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에는 영국 리즈대학 연구팀이 유전자 변형을 통해 더 빨리 배우고, 오래 기억하며, 복잡한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똑똑한 쥐’를 만드는 연구에 성공하기도 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유전자 변형이 된 쥐들은 다른 쥐들보다 지정한 대상을 더 빨리 인지하고, 물 속 미로찾기 테스트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고 밝혔다.
정용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두뇌자극이나 유전자 변형까지 가지 않더라도 치매나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연구가 기억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미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강남의 일부 수험생들 사이에 ADHD 치료제가 부작용 우려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을 올리는 약으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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